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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장님 칼럼

실력과 시력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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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닥터 조 작성일09-03-26 00:00 조회1,739회 댓글0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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몇 일 전 입니다.
수술한 환자를 회진하러 갔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었지요. 수술후 몸 속에 피가
고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시에 환자 몸 속에 넣어 두었던 몸 밖으로 피가
나오게 하는 장치가 없어진 것이었습니다.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, 몸 밖의 장치
속에 모여 있는 피를 제거해 주라는 제 지시를 간호사와 수련의가 잘 못 알아 듣
고 몸 속에 넣어 두었던 장치를 제거했던 것이었습니다. 그 장치를 제거할 수도
있는 시기이어서 그냥 넘어가려 하였다가, 그 수련의를 불러서 아직 피가 나오
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장치를 제거한 판단 실수에 대해서와 확실치 않으면 재
차 확인해야 하는 과정을 무시한 경솔함에 대해 혼을 내 주었습니다. 이후에 똑
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못하게 경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. 그러나 이번 삼월부터
의사 생활을 시작한 수련의는 무엇 때문에 혼이 나는지도 모르는 채 큰 눈만 멀
뚱이 뜨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, 저는 그 눈망울 속에서 이십년도 훨씬 전
의 나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. 저도 수련의 시절 이런저런 실수를 많이 하였을
것입니다. 그런 실수에 대해 그냥 지나간 적도, 혼이 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.
아직도 기억에 또렸한 일이 있습니다. 한 번은 수술실에서 어떤 교수님의 수술
을 보조하다가 지금은 어떤 실수를 하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여러 의사
와 간호사들 앞에서 그 교수님에게 크게 혼이 났었는데, 혼을 내신후 마지막으
로 "실력이 없으면 시력이라도 좋아야지" 라는 말씀을 하셨지요. 제 시력은 지
금도 좋은 데 말입니다. 그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는
않습니다. 그런데 왜 그 말이 이렇게 내 머리 속에 선명한지 모르겠습니다. 그
때 저는 앞으로 제가 누구를 혼을 내더라도 인격적으로 대해 주고, 왜 혼이 나
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자 하고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.
한 분야에서 오랫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, 그 방면에 대한 경험이 많아지
게 되고 또 실력도 늘어나게 되지요.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 근무를 하다 보면 나
이가 들어 가면서 실력과는 반비례하게 시력은 점차 쇠퇴하게 되지요. 많은 사
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잘 보이지 않음에 대해 한탄을 하지만 저는 노
안이 주는 또 다른 의미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. 나이가 들면서 점
차 실력도 쌓여 가는데 시력까지 계속 좋다면, 아래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이 얼
마나 답답할지요.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초년 시절은 싹 잊은 채, 자신의
성에 차지 않아 얼마나 혀를 끌끌 차며 있을지요. 그러면 개인들에게는 큰 스트
레스를 느끼게 하고, 그 조직에서는 지금 보다도 더 많은 갈등을 만들어 내지 않
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. 그러니 실력과 시력이 반비례함은 오묘한 조화가 아
닐까요.
화창한 날의 경치는 또렸하고 깨끗한 모습입니다. 인생으로 치면 젊은 날 얼굴
에 주름 하나 찾을 수 없는 그런 생기가 넘치고 자신만만한 모습이라 할까요.
이런 경치와 모습은 당연히 최고의 멋이지요. 그러나 흐리고 안개라도 살짝 끼
어 있는 날에는 또렸한 경치를 볼 수 없고, 흐릿하게 전체 윤곽만 두리뭉실하게
보이게 되지요. 마치 노안이 되어가면서 그 동안 또렸하게 바라 보았던 경치들
이 희미하게 보이게 되는 그런 경치이겠지요. 인생으로 치면 중년이 되어서 얼
굴에 삶의 경륜들이 하나 둘 늘어가게 되고, 머리카락도 점차 빠져 나가고 그나
마 남아 있는 머리카락들 사이사이로 흰 머리카락들이 자리 잡게 되는 모습일
것입니다. 요즈음은 이런 모습들이 훨씬 정겨워 집니다.
이 세상은 실력이 좋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, 시력이 좋은 이들과 그렇지
않은 이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게 되어 있지요. 그러니 실력과 시력이 정비례
를 하든 반비례를 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. 오래 전에 저에게 실력과 시력
에 대해 말씀하셨던 그 교수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실 까 궁금해 집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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