팝업레이어 알림

팝업이 없습니다.



 

원장님 칼럼

큰일 났다. 많이 보고 싶다.

페이지 정보

작성자 닥터 조 작성일08-02-12 00:00 조회2,778회 댓글0건

본문



어제 메일을 받았습니다.
오늘 서울 날씨가 많이 추우니, 옷 잘 입고 다니라고......
제가 평상시에 많이 하던 말인데 꺼꾸로 제가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.
메일을 보낸 이는 제 딸이지요.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이 아이도
제 눈에 넣어서 아프지 않은 그렇게도 예쁘고 소중한 아이이지요. 또 여느
집과 똑같이 "고은정 미운정"이 듬뿍 녹아있는 그런 아이이지요. 이 아이
는 아빠, 엄마, 남동생과 살고 있지요. 본인들은 구태여 부인하고들 있지만
주위 사람들이 이 아이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고 하지요. 모습뿐 아니라 성
격도 많이 닮아서 저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사고(?)도 많았습니다.
메일을 받으니 이 아이에 대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갑니
다. 이 아이는 아기때 얼마나 먹성이 좋았던지 집에서 그 아이의 자리는 항
상 냉장고 앞이었지요. 또 얼마나 힘이 세던지 엄마가 냉장고 문을 강력한
테이프로 붙여 막아 놓아도 어느틈엔가 냉장고 문을 열어 젖히고는 그 아이
는 행복한 냉장고여행을 하곤 하였지요. 그 당시 저의 벌이는 시원치 않아
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지요. 저는 그 아이의 먹성때문에
가끔씩 집에 들를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졸리운 눈을 비벼가며 가외
로 밤일(?)을 하여야 했지요. 그 당시 우리 집 엥겔지수는 매우 높아서 아
마도 극빈층 수치였다고 기억됩니다. 이 아이는 어릴때 차를 타면 우리 차
가 먼저 가야해요 삐억삐억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고, 어느 여름날
에 수두에 걸려서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밤 늦게 사람들이 거의 없는 문 닫
힌 놀이 동산 주차장에서 뛰어 놀곤하였던 안스러운 기억도 있었지요. 매
년 휴가때 마다 찾았던 용평에 가서는 매년 무대에 올라가서 그 조그마한
히프를 흔들어서 부모들을 즐겁게하곤 하였답니다.
이 아이가 네살때, 저는 하와이로 연수를 가게 되었고 그 덕분에 약 한달
간 하와이, 미국 본토, 캐나다를 여행할 수 있었지요. 초행길 이었기에 대
부분 그 지역의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였는데, 이 아이가 그룹중 항상 어린
아이였지요. 이 꼬마는 현지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
려 항상 그룹의 맨 앞에서 가이드 손을 잡고 귀를 쫑끗거리며 "yes"을 외쳐
대곤 하였답니다.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한 달 동안의 여행 일정은 너무나
힘든 것이었기에 이 아이는 나중에 코피를 흘리기도 하였답니다. 저희 부모
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치 이 아이가 영어를 다 알아듯는 양 기뻐하였
답니다. 그러나 그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지요. 초등학교때 이 아이
는 그 때 사진을 보면서 기억하지 못해서 부모들은 조금 실망하였답니다.
초등학교때 이 아이는 부모 품을 떠나 이국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지요.
떠나기 전 날 온 가족은 집 앞 한강고수 부지의 축구장 벤치에서 이별의 아
픔을 나누었지요. 그리고 저는 외국의 학교에 아이를 맡기고 오는 비행기
안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지요. 그러나 일 년후 전날 CNN 뉴
스에 대해 영어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아이를 보면서 놀라기도 하였지요.
중학교때는 다시 가족이 모여서 살았는데, 이 아이는 공부를 아주 잘해서
그 아이가 자기네 학원에 다닌다며 선전하는 학원 전단지에서 전교 1등 누
구누구 써 있는 아이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저는 그 전단지를 잘 보관하고
있지요. 저는 평생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그런 일을 이 아이는 해 냈던
것이지요. 주위에서 제가 누구의 아빠라는 말을 들을 때, 저는 이 아이의
아빠인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지요. 고등학교도 자신이 원하는 외국어고등학
교를 입학하였고, 대학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좋은 대
학에 입학해서 잘 다니고 있지요. 그런데 이 아이는 사춘기가 좀 늦게 왔는
지 대학 생활하면서 부모들과 많은 전투를 치렸지요. 이렇게 지내다가 약 3
주 전에 이 아이는 다시 가족의 품을 떠나 동생이 공부하고 있는 나라에서
교환학생의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.
싸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며드는 미운정이라는 것이 정말 못 말리는 것인
가 봅니다. 사람들은 그리운 사람이 가까이 있을 때에는 그 소중함을 잘 깨
닫지 못하기 마련인가 봅니다. 같은 집안에서 생활할 때에는 꼭 필요한 대
화만 나누며 별로 말도 하지 않았는데, 지금 떨어져 생활한 지 3주 정도 지
났는데, 이 아이는 저와 매일같이 메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공유해
가고 있답니다. 그리고 저는 이 아이를, 아이는 저와 가족을 많이 그리워
한답니다.
이게 가족인가 봅니다. 이게 사람이 느끼는 고급한 즐거움인가 봅니다.
그래서 사람들은 지지고 볶으면서도 가족을 이루어 살아가나 봅니다.

댓글목록

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.